K2

“첫걸음을 내딛는 일부터 이토록 어려운데, 이 길고 끔찍한 등반을 어떻게 완수하겠습니까... K2는 아무도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탈리아 제독이자 탐험가 겸 등산가인 루이지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Luigi Amedeo di Savoia)는 1909년 쿠르마이에르를 잘 아는 인도 출신 셰르파 350명 및 사진작가 비토리오 셀라(Vittorio Sella)와 함께 K2 등정을 시도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틀렸습니다. 그 후 45년이 더 걸리기는 했으나, 8,611m의 K2는 결국 정복될 봉우리였습니다. 1954년 7월 31일 CAI가 후원하고 아르디토 데지오(Ardito Desio)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이 봉우리의 정상을 처음으로 밟았습니다. 산악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의 승리와도 같은 정복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남긴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는 국민에게 용기를 주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는 지구가 우리의 강인함을 시험하기 위해 제시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의 기회 중 가장 큰 것이었으며, 광대하고 거칠고 사나운 미지의 자연에 대한 보잘것없는 인간의 가장 대담한 도전이었다.” 1954년 8월 4일 자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실린 디노 부자티의 이 말은 이 업적이 얼마나 비범한 사건인지 가늠케 합니다. 승리한 원정대원들은 최상의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동, 베이스캠프까지의 트레킹, 어프로치, 높은 고도의 1차 캠프로 전진, 정상까지의 마지막 스프린트. 그들은 비브람 밑창이 달린 각종 돌로미테 부츠를 각각의 경우에 맞게 신었습니다. 아르디토 데지오는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비탈레 브라마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제공한 비브람 밑창은 K2 원정에 대단히 유용했습니다. 어프로치 동안 오랜 행진에서 내구성과 저항성을 보여주었고, 바위와 얼음이 혼합된 지형에서는 완벽한 접지력을 입증하며 원정대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비브람 밑창은 1978년에 처음으로 산소통 없이 K2 정상에 도달한 미국 원정대가 선택한 밑창이기도 합니다. 원정대의 짐 휘태커(Jim Whittaker) 대장은 비브람을 선택한 이유를 다른 원정에서 얻은 성공의 원인이 세계 최고의 밑창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1970년대의 아웃도어 동호인들 사이에서 비브람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 기여한 수많은 승리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