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밀라노 대성당의 대리석 파사드와 첨탑, 인상적인 창은 산의 바위 벽, 봉우리, 깊은 동굴을 상징합니다. 돌로미티 산맥 출신으로 밀라노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산악인 겸 화가인 디노 부자티(Dino Buzzati)는 1957년 작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밀라노의 두오모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묘사하여, 산과 도시를 잇는 본연의 연계성을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맑은 날에는 두오모의 첨탑들 사이로 알프스가 닿을 듯 보입니다. 밀라노는 1891년 밀라노 산악회 SEM의 창립과 더불어 산과 연결된 도시로서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SEM은 노동자 계급이 육체와 정신의 회복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해 등산을 좀 더 가까이하기를 원했던 약 30명의 노동자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스스로 세미니라고 부르는 SEM의 회원들이 오른 봉우리에는 저마다 힘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구간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들 봉우리는 대중교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합니다. 또, 세미니들이 등정할 수 있는 날은 오직 일요일 하루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밀라노와 가까운 곳이라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생각도 할 수 없이 힘든, 진정한 정복이자 희생이 요구되는 등정이었습니다. 비탈레 브라마니는 산악 가이드로서 맞이할 미래를 위한 토대를 이곳에 마련하고, 세미니들의 끈기를 키우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확립할 방법과 창의성을 개발했습니다. 1928년 비탈레와 아내 마리아 파사나는 밀라노 중심부인 델라스피가 8번지에 첫 번째 비브람 매장을 열었습니다. 여기서는 등산 의류와 장비를 판매했으며, 비탈레는 목공 기술을 발휘하여 스키 수리 서비스도 제공했습니다. 밀라노시에서 이전에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이 매장은 머지않아 밀라노의 산악인 및 등산 애호가들이 모여 등반 계획을 세우는 만남의 장소가 됩니다. 이 매장을 자주 찾은 사람들 가운데는 마리아의 오빠이자 산악인 겸 예술가 오이제니오 파사나(Eugenio Fasana), 비탈레와 함께 카라마토 밑창을 처음으로 테스트한 비탈레의 등반 파트너 에토레 카스틸랴뇨(Ettore Castiglioni), 비탈레의 절친한 친구 엘베치오 보촐리 파라사키(Elvezio Bozzoli Parasacchi) 및 알도 보나코사 백작(Count Aldo Bonacossa)이 있습니다. 수년에 걸쳐 비브람 매장은 등산 장비와 관련된 그 모든 혁신에 힘입어 아방가르드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발터 보나티조차도 1947년에 레지넬리 고원의 카날로네포르타에 도전하기에 앞서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이 매장에서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밀라노와 산은 미래 지향적으로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동계 올림픽의 일부 경기가 밀라노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밀라노는 비탈레 브라마니에게, 그리고 비브람에도, 기회의 땅이자 선택의 장소를 의미합니다.